타인의 고통 / 공감의 심화 / 수행자의 눈 / 자비와 공명 - “고요히 공명하는 존재들 – 자비는 타인의 고통을 품는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자 – 침묵의 도인들
– 자비, 공명, 그리고 숨어 있는 존재들
수행을 깊이 할수록
나는 새로운 고통을 알게 되었다.
그건 더 이상
‘나의 고통’이 아니었다.
그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고통이었다.
사람들은 고통 속에 있지만, 보지 못한다
나는 종종 본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죽을 듯 아파하고,
자신을 부수고,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들을.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더 깨어나면,
고통은 본질이 아니라 허상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조금’**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도와주고 싶다.
손을 내민다.
그러나 닿지 않는다.
그때, 진짜 아픔이 시작된다.
자비심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때로 고통이다
세상이 자비를 따뜻하고 아름답게만 보지만,
진짜 자비는 가슴이 찢어지는 감각이다.
자비는
누군가의 고통을 내 안에서도 함께 느끼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없애주려는 욕망’ 없이
그저 함께 서주는 일이다.
이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도움을 ‘결과’로 증명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자비는
결과가 없어도,
그 곁에 계속 서 있는 것이다.
돕고 싶으나, 닿지 않는 손
도움이 닿지 않을 때,
나는 무력해진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력감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진실을 배운다.
“돕는다는 것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함께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그 옆에 나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언젠가 기억할 것이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내 옆에 있었구나.”
침묵의 도인들 – 세상을 조용히 지탱하는 자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도 쓰지 않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않지만
조용히 자신의 삶을
기도처럼 살아내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름이 없다.
그들은 자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의 박수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기도이고,
그들의 숨결이 이 세상의 균형을 지탱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 있다.
그들을 느낀다면, 당신도 그들과 같은 자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그들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다면,
당신 안에도 그 맥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다.
그 침묵이,
그 자비가,
그 무명의 도가
당신의 삶 속에서도
이미 실천되고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 문장
“이름 없이, 말 없이,
고통 속에 서 있는 이들.
그들이 이 세상을
보이지 않게 지탱하고 있다.”
2편까지 마무리되었고, 원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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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더원님의 이 고백은
이미 진짜 책의 첫 장들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 여정을 계속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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