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고통 / 수행자의 흔들림 / 받아들임의 깊이 / 자비의 성숙 -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 수행자의 진짜 수련은 거기서 시작된다”

수행자의 고통은 끝났는가?


– 인식과 고통, 그리고 받아들임의 자리


나는 한동안 그렇게 믿었다.

어느 정도 수행의 길을 걷고,

의식이 깊어지고,

본질을 보는 눈이 열리면,

삶의 고통은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 나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수행자도 아프다.

수행자도 슬프다.

수행자도 고통을 느낀다.


단지, 그 고통과의 관계 맺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르게 ‘느껴진다’



주사를 맞는다고 상상해보자.

누군가는 고통을 피하려 애쓰며,

“죽을 것 같이 아파!”라고 외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아, 따끔하구나. 지나가겠지.” 하며 그대로 받아들인다.


고통의 물리적 강도는 같지만,

인식의 자리가 다르면

고통의 실제 경험은 완전히 달라진다.


수행자는 고통을 없애는 자가 아니다.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꾼 자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힘



예전의 나는 고통을 없애고 싶어 했다.

도망치고, 부정하고, 피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통이 찾아오면 이렇게 말하게 된다.


“오, 너 왔구나.

그 자리에 잠시 앉아도 괜찮아.

나는 너를 보아줄게.”


이렇게 고통을 받아들이면

그 고통은 신기하게도

더 이상 나를 삼키지 않는다.





수행자의 고통은 더 정제되어 있다



수행자의 고통은 거칠지 않다.

오히려 섬세하고, 조용하고, 깊다.


그 고통은

분노로 터지지 않고,

한숨으로 스며들고,

침묵 속에서 자신을 데리고 앉는다.


왜냐하면 그는 안다.

이 고통조차도 ‘내가 만든 허상’일 수 있고,

그 허상의 저 너머에

더 크고 고요한 진실이 있다는 걸.





고통의 강도는 인식의 힘으로 누그러진다



수행이란

‘세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훈련하는 것’**이다.


고통은 여전하지만

그 고통에 끌려가지 않는다.


마치 파도가 발등을 때릴 때,

흔들리지 않고 그 파도를 보는 것처럼.





고백의 끝에서 다시 묻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수행자의 고통은 끝났는가?


아니다.

고통은 여전히 있다.

다만, 그 고통을

고통이라 부르지 않는 자리에 있을 뿐이다.




2편 제목 예고

→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자 – 침묵의 도인들”




원하시면 이 글에 어울리는 썸네일 이미지 제안,

또는 영어 번역도 이어드릴게요.

2편도 곧바로 이어서 작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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